22.01.15. 10:00-13:00
트레바리 안국아지트 302호, 파트너 포함 14명 참석
각자가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가진다면,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지유의 습성을 가지게 된다면,
저자 소개 : 버지니아 울프(1882~1941)
1882년 1월 25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방대한 서재를 가지고 있었으나 정작 그는 정규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진학을 못한 울프는 출판사를 설립하고 당대 지성인을 모두 모아 블룸즈버리 클럽을 결성했다. 버지니아는 서사적 산문 형식을 실험하면서 모더니즘 운동의 주요 인사로 떠올랐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글쓰기가 어려워진 1941년, 그는 우즈 강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발제 및 모임 내용 정리>
* 다음 내용은 발제문 및 멤버들이 모임 중 이야기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 자기만의 방과 일 년에 500파운드. 당신은 버지니아가 말하는 경제적 자유를 가지고 계신가요? 2022년 한국에서는 몇 평의 방과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요?
자기만의 방과 일 년에 500파운드. 버지니아가 말하는 경제적 자유이다. 2022년 한국의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연봉 실수령액 4000만원 정도. 혼자 살기에는10평 내외의 1.5룸 정도면 적당할까. 청년세대는 이러한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서재를 만든 누군가는 글을 쓸 때에 상황에 몰입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자기만의 방을 갖는다는 것은 가사노동이 배제된, 자기만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방이다. 가족과 함께 산다면 자기만의 방을 온전히 누리기는 어렵다. 문을 잠궈 공간을 분리해보지만 그 또한 투쟁이다. 문을 잠그는 행위를 부모들은 반기지 않기 떄문이다.
기혼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2. 경제적 자유가 참정권이나 기타 권리보다 더 중요하다는 버지니아의 말에 동의하시나요? / 제 2세대 페미니즘에서는 ‘자기만의 방이 없다는 조건은 유색 인종 여성에겐 가장 작은 장애물일뿐’이라며 버지니아 울프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본주의 사회다. 경제적 자유가 침해되면 다른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종속되며, 내가 스스로 먹고 살지 못하면 나의 생존을 책임질 수 없다. 경제적 자유의 의미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 '노동권 보장'이기도 하다.
버지니아 울프가 경제적 자유의 중요성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자기만의 방'이 나오기 약 10년 전 여성의 참정권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 1929년 발행/ 영국 여성 참정권 1918년 부여)
제 2세대 페미니즘의 비판점은 1세대 페미니즘 운동이 부유한 상위 계층의 백인 여성을 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는 데, 옆에서 '사색을 위한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비판할만한 소지가 있다. 예를 들어 흑인 여성에 입장에서는 '여성'이라는 조건 보다 '흑인'이라는 조건이 더 큰 걸림돌일 수 있다. 혹은 차별이 중첩되어 또 다른 문제로 이어진다. [교차성]
그러나 '자기만의 방'이라는 조건은 페미니즘의 필수 조건이 아니라 작가가 되기 위한 조건이었으므로 무조건 비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이 좋은 픽션을 쓰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이었지, 페미니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계층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기 떄문에 서로를 공격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3. 자기 정의의 부재 : “여자의 관한 책은 많지만 그 책의 저자들은 전부 남성이었다.” 남성은 왜 여성을 정의 내리려 할까요? 여성은 왜 자기 스스로를 정의하지 못할까요?
남성들은 늘 주체로서 살아왔기 때문에 쉽게 일반화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만큼 여성에 대해 쉽게 정의내릴 수 있다. 사람은 개별화된 존재인데, 여성을 개별화된 객채로 바라보지 못하고 스테레오 타입으로 끼워 맞춘다. 사람을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림이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해봐도 뮤즈는 늘 여성이고, 이 뮤즈는 대상화된 채 그려진다. 남성의 시선으로 곡해되는 것이다. (왜 여성은 남성을 대상화하려는 시도가 부족할까?)
4. “여성은 수 백년 동안 내내 남자의 형상을 실물보다 두 배로 확대해 비춰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해왔다. 여성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할 때면 거울 속 남성의 형상은 줄어든다.” -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백설공주에서 마녀가 가지고 있는 거울이 떠오른다. 듣고 싶은 얘기를 해주는 존재. 늘 남성을 확대시키고 당당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였다. 결혼 제도에서도 느껴진다. 결혼 전에는 '엄마'가, 결혼 후에는 '아내'가 거울같은 역할을 해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최근 결혼 비율이 낮아지고 비혼을 유지하겠다고 말하는 여성 비율이 높아지는 현상이 '거울'의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메갈리아의 '미러링'도 떠오른다. 멋진 존재라고 생각하게 해왔던 확대 거울을 걷어내고 추악하고 열등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니 남성들은 당황하게 된다.
5. 요즘 한국 문학에서 여성 작가들의 도드라지는 강세를 '자기 정의'와 연결해서 생각해볼까요?
2030여성이 출판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82년생 김지영 이후 변화가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과거에도 여성 작가들은 있었지만 여성 서사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김애란, 공지영 등)
그러나 요즘 신진 작가들은 분명하게 여성 메세지를 전달한다는 차이가 있다. (최은영, 김초엽, 정세랑 등)
한국 문학에 돈을 쓰는 소비 주체도 2030 여성의 비율이 높다. 그만큼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젊은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를 선호하는 것 같다. 과거에 부족했던 여성 서사나 연대를 강조하는 부분이 새롭고 재밌다.
6. 2022년 자기만의 방 상상하기 : 2022년 한국 여성들은 고학력에, 임금노동을 하고 있으며,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있습니다. (30대 여성의 34%가 비혼상태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계속 불안할까요? 우리는 500파운드를 벌기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있나요?
*마지막 발제문은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김현미 저)』을 참고하였습니다.
버지니아가 견뎌냈던 80년 전과 지금은 사뭇 다르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소비자본주의에 잠식된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이제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500파운드를 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방을 가지기 위해, 500파운드를 벌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직도 여성들은 위기 때마다 가장 먼저 밀려나는 약자이다. 여성에게 확장된 일자리는 저임금, 친밀성을 요구하는 여성화된 일자리일 뿐이다. 90년대생 한국 여성들의 자살률은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
행복 추구는 '소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며 소확행, 힐링, 욜로라는 이름으로 소비를 행한다. 그러나 그러한소비가 실제로 삶에 만족감을 상승시키는가? 그렇지 않다. 늘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내재되어 있고,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주식을 공부하고 부동산을 공부한다.
2022년에는 '방'보다 '여유 시간'이 더 부족하다. 버지니아는 하루 종일 강가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사색했다. 시간이 있으면 반나절 동안 진행되는 오찬에 참석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하염없이 읽기도 했다. 그가 주장한 '500파운드'의 출처는 숙모에게서 상속받은 유산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500파운드'를 벌기 위해서는 '근로소득'에 기대어야 한다. 대부분의 시간은 노동이 차지한다. 일하고 들어와 씻고 널부러져 유튜브를 보다 잠드는 삶 속에 글쓰기나 사색을 위한 시간을 가질 여유는 없다.
이러한 모습이 버지니아가 주장한 '자기만의 방'이 맞을까?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한 21세기 투자 전략> 따위의 책을 읽는 것이 버지니아가 상상했던 미래였을까?
'알파걸'이 되기 위해 아둥바둥 일하는 삶, 불안과 우울을 꾹꾹 눌러내는 삶을 넘어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전환을 상상해야 할 때이다. 이 방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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