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한우리, 김보명, 나영, 황주영
- 출판
- 여이연
- 출판일
- 2018.08.20
책 한우리, 김보명, 나영, 황주영(2018), '교차성X페미니즘', 여이연.
2022년 9월 '이상한 나라의 페미니즘' 독서 모임 후, 발제와 논의를 정리한 글입니다.
2022년 9월 모임부터 GD-셋토 파트너에서 [이상한 나라의 페미니즘] 클럽장으로 승격(?) 되었다.
클럽장으로서의 첫 책이자, 본격 페미니즘을 논하는 모임의 첫 책으로, 여이연에서 나온 <교차성X페미니즘>을 선택했다. 억압의 교차성을 이해하는 것이 현대 페미니즘의 첫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복잡하고, 문제는 다양하고, 이제는 우리에게 들이닥친 차별을 단순히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시대이다. 성차별인지, 인종차별인지, 자본주의에 의한 문제인지 하나로 딱 잘라 논할 수 없다. 이는 오히려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좁힌다. 때문에 교차성의 관점으로 지배의 매트릭스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1. 교차성 이해하기
책 서문은 벨 훅스의 인용으로 시작한다. 이는 '여성'으로서 우리의 경험을 인식하고 언어화하는 일이자, '여성'의 문제가 단일한 경험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고통을 받지만 모두가 억압을 받는 것은 아니며 억압의 정도가 균등하지 않다."
교차성 페미니즘은 미국 주류 페미니즘에서 소외되어왔던 흑인 여성의 경험을 언어화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교차성' 개념이 발화되기 전부터 꾸준히 이야기되어왔다. 대표적으로, 노예 철폐 연설을 하던 소저너 트루스의 연설이 있다. 소저너 트루스는 “나는 여성이 아닙니까?” Ain't I a woman? (1851) 연설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날 봐요! 내 팔을 보라구요! 나는 땅을 갈고, 곡식을 심고, 수확을 해왔어요. 그리고 어떤 남성도 날 앞서지 못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나는 남성만큼 일할 수 있었고, 먹을 게 있을 땐 남성만큼 먹을 수 있었어요. 남성만큼이나 채찍질을 견뎌내기도 했어요. 그래서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여성의 문제를 베티 프리단이 언급한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와 같은 백인 중산층의 관점에서만 생각했었다면, 완전히 다른 환경에 처한 소저너 트루스의 연설은 꽤나 인상적이다. 트루스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에 소속되길 바란다. 그러나 그녀의 경험은 유일하거나 공유된 여성 또는 인간 경험의 구현이 아니라, 차이의 개념을 드러낸다(Harraway, 1992).
교차성 개념은 법학자 크렌쇼(1991)에 의해 도입되었다. 흑인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이 오직 그의 ‘젠더’에 의해서만, 혹은 오직 그의 ‘인종’에 의해서만이 아닌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교차로의 사고로 비유했다. 흑인 여성의 차별은 '흑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인가,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인가? 혹은 새로운 정체성의 탄생인가? 이는 사실 알 수 없다. 교차성은 물리적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억압이 단선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개념으로 탄생되었다.
2. 신당역 살인 사건과 교차성
신당역 살인 사건은 2022년 9월 14일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전주환이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이다. 전주환은 피해자에게 불법촬영과 스토킹으로 고소당한 상태였다. 현 여가부 장관은 피해자 추모공간에 직접 찾아가 “(이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여성 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면 수많은 범죄를 제쳐두고 신당역 사건에 직접 찾아간 의도는 무엇인가.
신당역 사건은 여성 문제이자 노동자 권리 문제이다. 이는 여성 문제만으로도, 노동 문제만으로도 따로 놓고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사건 이후 서울교통공사 노조는 노동 현장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산재'임을 분명히 했다. 결국 이 사건은 성차별적 노동구조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다.
참고 : 한예섭(2022.09.22.), "신당역 살인사건의 이면엔 '성차별적 노동구조'가 있다", 프레시안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2092216380642031
신당역 살인사건의 이면엔 '성차별적 노동구조'가 있다
"남성중심적 조직,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조직,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조직, 노동자의 안전에 무관심한 조직…. 이런 서울교통공사에서, 직장 내 젠더 폭력을 경험한 노동자들이 회...
www.pressian.com
결국 교차성x페미니즘은 젠더 정치학인 동시에 노동과 시민권의 정치학이다. 사회의 복잡한 권력 구조들을 바꿀 수 있는 질문을 제기해야 하는 인식론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모임 중에 신당역 사건을 언급하며, 이 문제가 여성 노동자 배제로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여성 당직을 축소' 시키겠다는 대책이 언급되었다. 이는 여성 노동자를 향한 구조적 차별을 더욱 공고히 하는 차별적 수습에 불과하다.
그러나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어 2022년에 이를 때까지, '여자라서 살해당했다'라는 젠더 폭력의 연속성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여성들은 '여성 만의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거나, '자매애는 강력하다' 등의 여성만의 공고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구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여성 만의 안전한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당사자 여성'은 누구인가. 스스로를 어떤 여성으로 정체화하는가. 문제 해결 방식으로 생물학적 여성을 언급하는 순간, 앞서 여성 당직 축소 대책처럼 여성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말 것이다.
우리의 실천은 '정체성 사이의 횡단'이나 '정체성 그룹들 간의 연대'가 아니라 끊임없이 범주화화 규범화를 통해 정체성의 위계를 가르며 새로운 통제를 시도하는 구조-권력의 작동을 복합적으로 확인하고 인식하는 과정 속에 이루어져야 합니다(119).
우리에게 중요한 건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아니다. 지배적 사회에서 어떻게 '여성'이라는 범주를 규정했는지, 이로 인해 어떻게 권력이 작동하는지 질문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고한 틀에 균열을 내며 테두리 밖의 '이상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페미니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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